[한국과학창의재단에 바란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이사회는 재단의 경영목표 수립에서 사업 운영에 이르기까지 그 주요사항에 대한
전문성 있는 의사결정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국과학창의재단에 바란다’는 이사회의 자유기고 코너로, 과학문화 및 과학수학정보교육 분야의
국내외 동향 정보와 정책적 제언 등을 담아 재단 내외부의 이해 관계자들간의 교류와 성장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1984년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나온 인조인간 로봇은 사람처럼 생각하고 사람보다도 더 뛰어난 복합적이고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인공지능이었다. 2022년, 어느덧 우리는 네비게이션, 로봇 청소기, 인공지능 스피커, 추천 서비스 등을 통해 인공 지능 기술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일이 가능해졌지만, 오늘날 생활 속에서 접할 수 있는 인공지능은 과거 상상 속의 인공지능과는 조금 다르다. 성공적인 인공지능의 사례들은 특정한 문제만을 해결하도록 훈련되어 있고, 대용량 데이터에 의존하고 있다. 마치 40년 전 영화에 나온 터미테이터처럼, 사람과 같이 생각하고 다양한 기능을 복합적으로 수행하는 인공지능은 아직 존재하지 않으며, 그러한 기술에 도달하기에는 한계점 또한 명확하다.
이 글에서는 4차 산업 혁명과 AI의 가능성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이에 걸맞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변화될 교육의 미래를 가늠해본다.
■ AI의 성공 사례를 통해 살펴본 딥러닝 기술의 특성
딥러닝은 광범위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효과적인 방법으로서 매우 빠르게 발전하였다. AI 혹은 딥러닝의 급속한 발전의 바탕에는 빅테크 기업들이 제공한 편리한 도구들이 있었다. 페이스북의 파이토치(pytorch), 구글의 텐서플로우(tensorflow) 등으로 대표되는 개발 도구와 github 등을 통해 오픈 소스를 공유하는 플랫폼이 발전하면서 유례없이 손쉽게 최신 프로그램 코드를 볼 수 있고, 새로운 알고리즘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는 프로그래밍 혹은 소프트웨어 개발이 소수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던 것과는 대조된다. 몇 가지 성공적인 패턴을 활용함으로써 많은 분야에서 손쉽게 최고 성능의 기술을 제안할 수 있었고,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학부생이나 심지어 고등학생도 내로라하는 우수 학회에 최고 성능의 기술을 개발하여 논문을 작성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오곤 했다.
하지만 딥러닝이 많은 문제를 해결한 지 10년이 지났고, 어느덧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다. AI 기술 중 대중성과 범용성을 인정받고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들도 등장하였고, 이를 폭넓게 활용하며 AI는 놀라운 발전을 이어나갈 것이다. AI관련 기술이 우리 사회 깊숙이 자리하는 일은 이제 거부할 수 없는 필연적인 흐름이 되었지만, 첨단 아이디어로서의 학술적 가치에 대한 관심은 조금은 시들해진 듯 하다.
꼭 모든 사람이 이러한 기술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새로운 흐름을 주도해야 하는 것일까? 수요자층의 특성을 분류하여, 각각의 생활 영위를 위한 적합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접근 방식일 것이다. 이에 따라 크게 세 가지의 방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 AI의 시대를 받아들이는 교육의 세 가지 방향
첫째,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새로운 도구를 사용할 수 있도록 경제적, 심리적인 장벽을 낮추어줄 수 있어야 한다.
AI관련 기술은 직관적이고 생활을 편리하게 한다고는 하지만 특정 플랫폼이나 개발자의 활용 시나리오에 종속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초등학교 저학년, 노인, 혹은 그밖에 사회적/지역적으로 소외된 집단에게는 이해도나 접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단편적으로 기술에 노출된 사람에게 AI나 새로운 기술, 앱 등은 두려운 존재이다. 거리에 놓여있는 키오스크나 무언가 하기 위해 새로 설치하라는 앱은 당연하다는 듯이 개인정보를 요구하기도 하고, 무엇을 눌러야하는지 생소한 경우가 많다. 각종 버튼을 누를 때마다 그 행위가 무엇을 전달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정보를 받아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에 반해, 터치스크린에 익숙한 요즘의 유아들은 아무 생각 없이 텔레비전 화면을 만져서 장면을 바꾸려고 시도한다. 텔레비전 화면은 그에 반응하지 않고 송출된다.
새로운 기술은 정보의 편향성을 인지하여야 하며, 최대한 많은 사람을 아우를 수 있도록 배려하고, 매체를 단순화하고 기능을 설명하여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재단에서 주도하는 컨텐츠나 각종 전시, 행사를 통해 널리 쓰이는 기술이나 작동 원리를 설명하여 디지털 문해력을 높이는 한편, 소외되는 사람 없이 양질의 컨텐츠를 통해 모두가 다양한 기술에 친숙해지고 필요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도록 각종 채널을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현재 왕성한 경제 활동을 하는 인구가 AI관련 기술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보조하여야 한다.
실제 사회의 생산적 역할을 도맡아 하는 계층은 새로운 시대 흐름을 직접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널리 쓰이는 성공적인 AI기술은 개발하기 편리하게 모듈화되어 있고, 다른 첨단 기술과 비교해 진입 장벽이 낮은 편이다. 마치 취업하는 대부분 사람이 엑셀을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것처럼, 일부 AI 기술들은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도구들은 데이터와 결합할 때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고, 산업체에서는 필요한 데이터를 쉽게 얻을 수 있다. AI와 데이터의 결합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을 이해하고, 양질의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축적하여 활용한다면 다양하고 신선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이를 위해 사회 구성원의 재교육이 절실하다. 온라인 상에 무수한 자료가 존재하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필요한 지식을 얻기 위해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할지 막막할 수 있다. 수시로 새로운 도구와 기술이 탄생하는 시점에서, 다양한 배경,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첨단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시작점을 제시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셋째, 미래 과학 기술 발전을 견인할 핵심 인재들을 위한 토양이 마련되어야 한다.
미래 사회의 주인공들은 필연적으로 인간과 AI가 공존하는 사회에 살아가야만 한다. 현대 AI기술이 매우 뛰어나기는 하지만 막연하게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당장 사람을 대체할 수도 없다. 사람 대부분은 기술에 대한 이해 없이도 기술을 향유하고 간단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경제 활동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존 기술을 활용하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선도하기에 역부족이다. 첨단 국가로서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인재’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로는 AI 혹은 자동화된 시스템의 역량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AI와 사람의 역할을 정의하고, 그것들을 지켜나갈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가장 기본적인 부분인, ‘수학과 과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일 것이다. 초중등 교육 단계에서부터 가능성을 발굴하고, 뛰어난 인재를 육성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 그리고 고등 교육기관으로 연계되어 효과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사회의 아낌없는 지원이 필요하다.
■ 특별한 AI를 위한 특별한 교육
기술이 편리해질수록 의뭉스러워진다. 사람들은 기술에 대한 특별한 이해가 없이도, 이를 얼마든지 수용하고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술에 대한 이해도 격차가 커지면, 이를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자와 과거의 삶을 고집하는 자 사이에 생활 수준의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 이러한 흐름에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하고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 사회 체제, 특히 교육 체제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AI와 공존해야 하는 미래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한국과학창의재단이 보유한 사업 및 기관 역량이 사회 각 각층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정보의 제공 및 기술 접근성 개선분야에 집중되길 바란다. 급격한 기술전환을 계속해서 만들어 낼 ‘특별한 AI’와의 공존을 위해서 한국과학창의재단만의 준비는 ‘과학기술과 시민의 삶의 접점을 확장’시키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지역/사회 계층을 아우를 수 있는 기술분야의 보편교육부터 영재교육까지, 그 특성에 맞는 합리적인 접근방식을 바탕으로 ‘특별한 교육’이 확산될 수 있길 기대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김영민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 기고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 조교수)
<한국과학창의재단에 바란다>는 이사회의 자유기고 코너로, 과학문화 및 과학·수학·정보 교육 분야의 국내외 동향 정보와 정책적 제언 등을 담아
재단 내외부의 이해 관계자들간의 교류와 성장에 기여 하고자 합니다.